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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지혜/어린이집 이야기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자정까지 의무 연장.

 

 

 나는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이다. 

 

 이 사안에 대해 듣고 정말 나의 귀를 의심했다.

 현장에 있으면서, 이런 정책의 움직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언론을 통해 먼저 듣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란...

 우리 집 이야기를 남의 식구 입으로 듣게 되는 듯한 느낌?

 무엇보다 정책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학회나 이런 곳에서 흐름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건 ... 뭔가요?

 

 

 오늘 출근한 김에.. 원장님과 여러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12시 퇴근 .....

 

 당장 7월부터, 그러니까 다음주 월요일부터 시행인거다.

 우리 어린이집 외에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도 신청해서 올 수 있는거...

 원래 24시간 시간제 반을 운영을 했던 어린이집이지만, 7월에 시간제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정상 7시ㅣ 30분 운영시간으로 변경되었는데..

 

 

 야간 시간제를 운영하면서 별에 별 엄마들을 다 봤다.

 9시 반에 끝나는데,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으셔서 물어봤더니..

 경찰서에 애를 맡겨달란다. ...

 괜찮다고.......

 애가 택배인가요.....?

 

 

 어떤 어머님은 술이 거하게 취하셔서 몸을 가누지 못하실 정도로 휘청거리시며....

 아이도 모르는 남자 분을 대동해서 픽업을 오셨다.

 아이가 "엄마 누구야?"라고 묻는데, 선생님이 이 편에 애를 하원시켜도 될지.......

 아빠한테 연락을 해야할지...... 연락을 해서 가정에 파탄이 나면 어떻게 될지.....

 

 야간 운영을 하면서 물론 야간에 근무하시는 어머님들의 편의를 봐줄 수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정말 아이를 짐처럼 여기는 엄마, 아빠들도 있는건데...

 12시까지 운영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야간 수요, 그렇게 많을까?

 많다고 하더라도, 사회 정책상 .... 그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이 먼저여야하지 않을까?

 밤 9시, 10시면 잠을 자야할 아이들이..

 집도 아닌 곳에서 잠을 못자고,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를 기다리는 거...

 씻지도 못하고, 편하게 눕지도 못하고 ....

 하루종일 집단 생활하면서 편하게 자기 하고 싶은대로 못한 스트레스, 집에서라도 마음껏 풀어야지 애들도 살지 않겠나..?

  아이들 입장에서 아무리 보육한다고 한들, 집단 생활에서 개별적인 욕구 다맞춰주며 집처럼 편하게 있을 수 있겠냐고..

 재미잇는 장난감, 재미있는 놀이, 좋지만...... 아이들에게도 쉼이 필요한건데...

 

 8시 반, 9시만 되면 졸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가 잔깐 잠에 들었는데...

 그 다음 날 어머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여기서 자면 집에 가서 12시, 1시까지 잠을 못든다고.. 재우지 말라고 하셨단다.

 애가 졸린데도 억지로 깨워서 자극적인 놀이를 하며 쉼을 방해해야하는 상황도 생기는거다.

 

 엄마가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 때문에 커리어 못쌓고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거... 같은 여자로서 너무 속상하지만...

 정말 더 귀하고 중요한 가치가 뭔지 다들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아는 어머님도 원래 직장에서 근무하셨는데 최근에 휴직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계신다.

 첫째는 아침 7시 반에 맡겨서 오후 7시 반에 데리러 오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렇게 집에 데려다놓으면 끝이 아니라 저녁 차려 먹이고 할머니 편에 아이를 맡긴 후에 다시 회사에 가서 12시, 1시까지 야근을 하셨다고 한다.

 물론...... 엄마가 일을 해서 아이가 불안하고 문제가 많은건 아니다.

 그런데 그 어머님은 후회를 많이 하고 계셨고, 둘째를 키울 때는 돈이 중요한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서 잠시 일을 그만두셨다.

 첫째 아이가 인지적으로 조금 늦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아이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부분도 적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 때.... 그리고 어머님도 아이가 커가면서 주는 기쁨을 누려야 할 때....

 그 때를 놓쳤기 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나도 컸던 거다.

 

 3살 아이들을 맡으면서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귀하고 너무 예쁜데...

 내가 그 아이들과 주로 생활을 하는데... 엄마들은 이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많이 못봐서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애교피우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행동들을 하는데.... 이런 걸 놓치고 사시면 어쩌나 싶은 생각들도 들었다.

 아이들 행동 하나 하나, 기질적인 부분, 생활 습관, 성격 .... 어렸을때부터 유심히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배려하고 맞춰야 하는데..

 엄마들이 애들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도 느꼈다.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받는 행복감 ...

 이걸 사회가 뺏아가려는거 아닌가?

 

 

 12시까지 아이를 맡겨줄 곳이 생겼다는건....

 사회적으로 12시까지 마음놓고 일을 해라라는 암묵적인 신호인데....

 성공하고자 하는 엄마, 무엇보다 돈이 중요한 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고, 더 빨리 퇴근해서 아이들을 보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는 어떤 느낌의 소식일까?

 "저... 오늘은 아이를 6시에 데리러 가야하는데요.."라고 말하면 상사는 "12시까지 애 봐주잖아"라고 얘기하겠지...

 

 육아를 국가가 책임져준다고 하는데 그 질은 보장이 되어 있는거?

 어린이집에 일을 하고 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 아무리 자상하고 아무리 엄마보다 섬세하고 잘 챙겨주는 교사도 엄마만 못하다.

 엄마보다 애 보는 능력이 떨어지고, 민감성이 떨어지고, 상호작용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그 연령에 누려야 할 관심의 양이 있고, 부려야 할 자기 주장이 있는데...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인거..

 "여럿이 있기 때문에 안돼"라는 논리가 아이들에게 설득이 안되는건데...

 어린이집 생활을 하면서 보면.... 충분히 받아줄 수 있는 일도, 친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안되는 경우도 많다.

 따뜻하게 잘 대해주고, 재미있게 놀아준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놀이보다 우선시 되는건 일과 운영의 흐름이고...

 너무 어린 연령부터 나눠쓰고, 함께 쓰고를 배우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좋겠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일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언론에서도 어린이집 교사 학대로 터뜨리는데....

 1년 양성 과정으로 정말 아이에 대해 아는 지식이 얼마나 있으면 있을까 싶은 사람들도 많다.

 보육교사 자격증, 정말 쉽게 주고.... 쉽게 양성했다.

 그래서 사람 구하는게 어렵다는 말도 계속 들리는 것 같다.

 진짜 괜찮고, 좋은 선생님들이 이 현장에 오래 남아있겠냐고.....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박봉에 ... 그래도 아이들 좋아하는 마음으로 남아있는 선생님들도 많고 거의 사명감에 의해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12시까지 근무해야한다고 하고, 교사들은 별로라는 사회적인 인식은 만연하고...

 나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교만한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당장 때려치고 어디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이 돈은 벌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나마 다른 어린이집들보다 교사의 질이 괜찮다는 국공립에 이렇게 떨어뜨려놨으니.... 이직율은 얼마나 높아질것이며....

 그 영향은 또 누구에게로 갈 것이며.......

 

 당장 다음주부터 시행인데, 시간 연장 교사를 뽑는다고 하더라도... 괜찮고 수준 높은 교사를 뽑을 수 있겠냐고..

 한편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겠지... (밤에 애들 봐주는데, 수준 높은 교사가 필요하겠냐고..)

 그러니까 어린이집 사고들이 터지는거다.

 그런 생각이니까 어린이집 교사의 사회적 위치가 진짜 ...... >_<

 당장 전체 국공립 시행인데, 뽑아놓은 교사는 어떻게 유지할건데..

 얘기들어보니까, 2달간으 교사의 인건비 80% 지원해주고, 그 다음 달부터는 실적에 따라 지원한다고 하는데..

 실적이 없으면 그 교사는 실직하게 되는건가?

 도대체 무슨 대책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모든 국공립이 시행할 정도로 높은 요구가 있는건가?

 각 어린이집에 한 명씩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한 명의 교사가 12시까지 근무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게 무슨 돈 낭비냐고...... 거점 어린이집 몇 개 정해두고 있든 없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게 낫지.........

 

 휴우 .......................

 

 우리 어린이집도 시간 연장 교사가 없으면 정규반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처럼 돌아가야한다고 한다.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지금 당직처럼 매일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 2주에 한 번씩 야간 근무를 하게 된다.

 만약에 야간에 남는 아이들이 없으면 일찍 퇴근이지만, 복불복으로 야간에 예약이 있으면 12시 퇴근 ..

 12시에 퇴근하는 날은, 오후 3,4시 출근을 해야지 되는데...

 그럼 정규반 담임이면서도 오전 일과를 함께 할 수가 없게 되는거.

 3, 4시면 아이들 하원하는 시간인데... 그 사이에 다른 교사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어쨌든..

 특히 유아반 같은 경우는 1명이 담임인데, 담임이 그 날 아침에 없어....... 12시까지 근무하기 위해서 .....

 15명, 20명의 고정적인 아이들의 보육에도 지장이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며..

 

 그럼 한편에선 그냥 12시까지 추가 근무해... 라고 하겠지?

 그건 미친 소리고 ....

 보육하는게 얼마나 육체적인 소모가 큰 일인데....

 가끔 1시간, 2시간 더 보육할 때도 체력이 완전 바닥나서 미칠 것 같은데 -_-;;

 

 그리고 시간 연장 교사를 고용하면 정규반은 편해진다.

 그런데, 아까 얘기했듯이 월 20시간 이상의 실적이 없으면 교사 인건비가 지원이 안된다.

 아 이건 뭔말 .... ? 진짜 .....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 -_-

 실적을 위해 애들을 늦게 까지 남으라고 할 수도 없고... 이런 불안정적인 지원 체계는 어쩔..?

 

 

12시에 추가 근무를 하는 교사들은....... 집엔 어떻게 가나?

 택시비 지원은 해주나?

 내가 어린이집 다니면서, 두 세번 택시를 탔는데. ... 다 12시가 넘어서 ㅠ (그렇게 야근하는 직장이다ㅠ)

 진짜 무섭다. .... 여자 혼자서 택시타고 가는데....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택시 번호 적어놓고 ..... >_<

 여교사들의 치안은 어떻게 담보해줄건데ㅜㅜ

 휴 .................................

 

 

 교사가 봉인가보다.

 무튼 이 정책은 진짜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허술하게 대충 만들어서 시행한다고 공포하면 끝인건지.....?

 얼마나 고민을 하고 정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고민하고 만든 정책이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편파적인 입장인건가?

 12시까지 연장 근무할 어린이집이 필요하다면, 만드는 것까지 문제삼지 않겠다. 

 그 기능에 대해, 그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할 경우의 대안으로 제시해야지 되는건데..

 이건 너도 나도 마음 편하게 이용해라라는 식으로, 12시까지 아이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

 부모를 돈 버는 기계로 생각하고 만들어내는거 아닌가 싶다.

 

 정말, 보건복지부며 뭐며 관계자 뇌를 폭발시켜버리고 싶다.

 제대로 생각 좀 하고 사시라며 .....

 사람을 제대로 키우려면,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나중에 욕하지 말고... 어렸을 때 신경써서 키우면 되는데...

 지 애들은 그렇게 안키울거면서, 지 손자들은 그렇게 안 키울거면서....

 정말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ㅠㅠㅠ

 

 너무 속이 상하고, 정말 열불이 뻗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