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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느낌/책

[불멸의 신성가족] 사법 가족의 생존법이 낳은 결과,



 
불멸의 신성가족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두식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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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가진 구조들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사법부, 사실 남의 이야기이고, 나와 거리가 먼 세계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역시 첫 부분에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런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고,
 법과 관계가 된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딱히 법에 불만을 갖는다던가, 법조계의 세계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접하고 한 장 두 장을 넘기다 보니
 괜히 내가 모르고, 힘 없고, 빽이 없어서 무시를 당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지금 당장에는 법과 연결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연루되었을 때, 내가 과연 이 체계 안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자,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도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사법계, 당연히 똑똑하시고 잘나신 분들이라 알아서들 잘 하시겠지라는
 무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뢰가 낳은 폐해.

 얼마전 노 전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되어서도, 검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있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이 일이 터진 찰라라서, 나도 그 목소리에 한 몫했던 것 같다.
 검찰이 그들 스스로 결정하고 그들 스스로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기느냐,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 문제다.
 거절할 수 없는 청탁, 거절 할 수 없는 돈 .
 사법계에 여전히 존재하고, 당연하게 돌고 도는 그 순환 시스템이,
 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무서운 힘으로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법조계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판검사, 변호사들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불만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판검사, 변호사들은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자신들의 일상과 고뇌를 들려주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판검사들이 뭐라고 변명하든 세상에 거절할 수 없는 돈이나 관계 따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돈을 주든 거절하면 그만이고, 청탁을 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돈 또는 관계란, 원만하다는 평판에 대한 판검사들의 갈망이 만들어낸 일종의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젊은 판검사들이 선배들이 만들어내는 평판에 부담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눈앞의 불의에 맞선 결과로 잠시 나쁜 평판을 얻는다 해서 당장 죽는 것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또라이'로 찍히는 게 고작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을 때 노전대통령이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기껏해야 또라이로, 바보로 찍히고 넘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앞의 불의에 맞선 결과로 잠시 나쁜 평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책을 읽는 동안, 판사들이 내리는 결정은 가장 공정하고 가장 깨끗해야 함에도, 
 검사들이 주장하는 바도 사람들의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함에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이 하는 짓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다루고 있다.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그들이 생각했던 각본대로, 사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도 - 
 악의가 아닌 '사람'의 머리이기 때문에.. 
 청탁을 거절 할 수 없는 것도, 그들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에, 
 그래서 ...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문제도,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책을 쓴 저자도 역시 법조계에 몸을 담았었고, 현재는 로스쿨의 교수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정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굴러갈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이것을 벗어 버리기에는 너무 먼 현실들. 
 이 때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 정부에서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힘이 될지,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최초로 밝히는 사법 구조의 여러가지 폐해들과 사정들,
 나와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고, 관심이 가지 않았었는데, 읽고나서 보니 그런 구조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들이 단순한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각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책이 많이 읽히고, 생각있는 지식인, 생각 없는 일반인들도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통해, 
 사회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으면 한다. 

 아무 생각 없던, 나도 역시 사회의 부조리함에 성을 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