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즌 몇 일까 . 

 신랑과 처음 만나서 연애하다가 중간에 공백기 갖고 다시 만나고 .. 믿음으로 결혼을 결단하고 .. 

 결혼 후에도 여러가지 폭풍이 있어서 시즌을 나누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잊었더니 시즌 몇인지 까먹었다. 

 

 한 시즌 4 쯤 될 것 같긴 한데 ㅋㅋㅋㅋ 

 지난 겨울에 선교가 그 시즌의 시작이었을까. 

 나는 선교를 등록했을 뿐이었는데, 우리 가정에.. 아니 나에게 엄청 큰 시험이고 고난이 찾아왔었다. 

 임신한 상태로 첫 아이를 돌보는게 너무 힘들었던 그 때 신랑의 두 달 장기출장이 잡히고, 갑자기 허리를 삐끗하고 .. 

 그러다 선교 중에 신랑의 퇴사 소식을 접하고 ..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은 소식들의 연속.  

 그 때 선교 기간 중이었기 떄문에 다행히 마음을 다 잡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이야기 후속편 . 

 

 신랑은 우리가 선교에서 돌아오는 주에 회사에서 일을 정리했다.

 2월에는 설 연휴가 있었는데, 쓸 수 있는 모든 연차를 끌어 써서 2월부터 쉬기로 했다. 

 다행히 2월 월급은 나왔고, 2월은 재직중 상태로 떴었고.. 설 명절 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퇴사하면서 같이 일했던 과장님이 추천해준 베트남 회사. 

 베트남 현지회사였고, 신랑이 일본어,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했더니 마음에 들어 오퍼가 왔다. 

 신랑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 싶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긴 했는데, 여러가지 걱정이 앞서긴 했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상황, 그리고 거기서 받는 월급으로 생활 가능한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공기, 그리고 독박 육아의 또 다른 차원의 고난. 

 성장하는 나라라곤 하지만, 피하고 싶으면 피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면접을 보러 갔고(항공권은 자부담.....-_-;;) 연봉 이야기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보류해두기로 했다. 

 가까이 지내는 교회 언니, 오빠가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는데.. 우리도 차라리 캐나다를 갈까 싶었다. 

 내가 가진 유아교육 관련 자격증이 이민에 도움이 된다기에 또 알아보고, 신랑도 학교 다닐 때 용접을 꽤 잘했다길래 용접학원도 알아봤다. 

 이민은 돈이 있어야 간다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옴. 용접학원도 보통 용접학원이 아니고 이민 알선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신랑 허리도 온전치 않아 용접은 패스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먹고 살려면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신랑..;;) 

 나는 자격증만 있지 영어가 1도 안되는데.. 무슨 이민인가 싶어서.. ;; 먼저 아이엘츠부터 공부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둘째 임신중이니까... 내가 둘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는 있을까 싶기도 하고 .. 

 뭔가 딱히 답이 없는데, 이민을 준비하려니 막막하고 어렵고 ... 그랬었다. 

 잡코리아, 사람인에 신랑과 함께 공고를 보면서 괜찮은 조건이나 집 가까운 곳, 인 서울로 넣으면 연락조차 오지 않는 취업 현실 ㅠ

 자소서 문제일까, 이력서 문제일까.. 이직 하려면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2월, 3월 약간 피 말리는 시간들.... 

 애써 괜찮아, 뜻이 있을거야 라고 위로하긴 했지만.. 정말 이러다가 내가 애기 백일 됐을 때 쯤 취업해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먹고 살 작정을 하긴 했다. 

 상대적으로 나는 ... 어린이집에라도 취업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신랑의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렇게 해서 주어진 면접의 기회들이 감사했다. 

 몇 차례 실패를 맛보고.... 내정자가 있다던가, 뭐가 안맞다던가... 

 세번째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다녀와서 신랑이 '완전 망했어.'라고 얘기해서 .. 이번에도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접었었다. 

 외국계 회사에 영어를 잘해야하는데, 임원 면접을 볼 때 임원이 "의사소통이 자유로울 정도의 영어 실력은 아니네요."라고 딱 집어 얘기했다고 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있을 때 쯤이 출산 임박. 

 제왕절개였으니까 날짜를 정해야하는데.. 4/5, 4/9일 중 택일이었다. 

 난 하루라도 더 빨리 낳고 싶긴 했지만, 아기가 뱃속에서 있을만큼 있고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꺼내주고 싶어서.. 

 차라리 진통 걸려 응급 제왕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4/9로 날을 정했다. 

 취업이 되지 않은것은 않는거고, 나는 애기를 낳아야 하니 불안해하기만 할 수는 없었던 것. 

 신경을 오히려 그 쪽으로 안 쓰려고 무딘 애를 썼던 것 같다. 

 통장 잔고를 보면서, 산후 조리 목적으로 모아둔 돈은 아니었지만 적금도 딱 맞게 만기되는게 있었고.. 

 어찌 어찌 산후조리는 할 수 있겠다 싶어 금전적인 부분을 신경쓰지 말자고 했다. 

 2월 말 퇴사니까 3월에 바로 실업급여 신청하라고 해서 실업급여도 나왔고.. 

 소득이 갑자기 줄었기 때문에 나는 차상위 계층이나 그런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알아봤었다. 

 그러던 중에 영양플러스도 알게 되었고 ..

 그런데 ... 정말 ...... 거짓말처럼..... 

 만우절 날, 4/1일. 마지막으로 면접 본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정말, 올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였지만.. 정말 거짓말 아니야? 라는 생각에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 어디 갈까? 해서 고양 스타필드를 갔고 ㅋㅋㅋ 

 칸샤와 복덩이 예쁜 여름 옷 하나씩 사고,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소고기를 샀다. 

 그리고 신랑 좋아하는 간식 고래밥, 홈런볼, 프링글스 등등을 샀다. 

 신랑 좋아하는 카레를 먹고, 신랑 좋아하는 레고를 구경하고 우리의 자축 파티를 그렇게 했다. 

 취업일은 4/15일로 정해지고.. 

 계산해보니 4/9일에 아기를 낳고 내가 딱 조리원에 있을 때 출근을 하는 꼴이 되었다. 

 기막힌 타이밍, 그렇지만 신랑은 수술한 나의 보호자로 밤낮 없이 병원에 있다가 주말 쉬고 출근하는거.. ;; 

 

 

 금전적인 부분

 회사를 그만두고나서 퇴직금, 위로금, 실업급여 등으로 생각지도 못한 수입들이 생겼다. 

 취업을 당장 하지 않아도 아이 낳고 산후조리하는 기간 동안 어떻게든 버티겠지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외벌이로 생활하면서 언제나 생활비가 부족하긴 했지만, 펑펑 쓰며 과소비하는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씀씀이를 크게 줄이지 않고 '우리 이제 벌이가 없으니 아껴쓰자' 정도로 살았다. 

 숨이 조일만큼 답답하지 않았고, 그냥저냥 먹고 사는 정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난 임신중이니까 먹어야지 하면서 즐겁게 먹었다 ^^

3월 한 달 소득이 없는 것으로 국가에는 잡혔다. 건강보험료가 만원대가 나왔다(전월세 포함이 안된 돈이어서 더 쌌던 것 같음)

 거의 저소득층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이었던 것 같다.

 영양플러스를 예전에도 신청해보려고 했는데, 소득 기준이 애매하게 안되서 못했는데.. 이번에 신청하려고 보니 전 3개월 보험료로 산정한다고..

 3개월 평균치로 계산하니 대상자가 되어 신청도 되었다.

  

 

퇴사를 하면서 주어진 휴식 시간. 

 신랑은 작년 12월 30일 허리를 삐끗해 연초부터 허리 때문에 계속 고생했었다. 

 주사 치료 받고 겨우 몸을 일으켜 지방 출장까지 갔는데, 퇴사라니... 이참에 쉬면서 치료 받으라고 했다. 

 도수치료를 주 2회 편한 시간에 오가면서 치료 받고, 또 소개 받은 척추 재활 하시는 분께 가서 치료도 받고.. 

 운동은 많이 못했지만, 치료에 조금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막달 임산부가 아니라면, 신랑 허리가 괜찮았더라면, 자발적인 퇴사였더라면 우리는 너무 신나게 놀러다녔을 것 같다.

 사실 일 그만 뒀다고 했을때부터 근교라도 놀러갈까, 강원도라도 다녀올까 숙소를 알아봤었는데..

 운전해서 오가는 길도 걱정스럽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 과감하게 내려놓게 되었다.

 쉼.

 정말 이렇게 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랑도 하루종일 뒹굴뒹굴 놀고.. 나도 그러했다.

 2월에는 복덩이가 어린이집 입소 전이었으니까.. 쉬다가 틈나면 미쁘다 카페가서 놀고..

 나는 복덩이 어린이집이 발도르프라고 해서 독서 모임이나 놀이감 만드는 소그룹 모임 등도 참여할 수 있었고..

 신랑 찬스 덕분에 여유로운 막달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아픈 신랑이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낑낑대고 복덩이를 양육했을 때보다는 훨씬 수월한 것도 감사.

 집 근처 공원에 가도 같이 가고, 병원에 가도 같이 가고..

 더구나 32주부터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서 진료를 봤는데 교수님은 토요일 진료가 없으셔서 평일에 진료를 봐야 하는 상황.

 신랑이 없었더라면 복덩이 데려가서 초음파도 보고, 산전 검사도 하고 했어야 했는데 가능했을까 싶다.

 3월은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어서 등하원도 그렇고, 적당히 짧은 시간 어린이집에 있다가 하원하는 시스템이라 피로도가 더 컸는데..

 그것도 같이 하니 참으로 감사 :)

 많이 누리지는 못했지만, 막판에는 복덩이 어린이집 맡겨두고 잠시 생기는 오전 타임에 홍대 카페 가서 데이트도 했다.

 이게 얼마만에 누리는 둘 만의 시간인지 ...

 복덩이가 어린이집을 일찍 갔더라면 영화 보고, 쇼핑하고 더 즐겼을 수도 있는데(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적절한 타이밍으로 조절하신 것 같다는 느낌 ㅎ

 

  상담 시작 .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고.. 

 신랑의 갑작스런 퇴사와 함께 불안감, 그리고 나도 예민해서 다투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늘 그랬지만 정말 별 일 아닌걸로 다투고,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닿게 되자 불안감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한참 베트남, 캐나다 이주도 생각하고 있었던터라.. 이 상태로 제3국가에 가서 우리 가정만 동떨어져 살면 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관계를 계속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해서 기초 공사는 해두는게 좋을 것 같아 상담을 권유했다. 

 평소같았으면 여러가지 핑계가 있었을텐데, 시간도 여유로웠고 상황이 그래서 그런지 받아보겠다고 했다. 

 상담 신청하면서 문제로 생각하는 상담 이유를 적으라는데, 그것도 내가 적었다. 

 처음엔 엄청 소극적으로.. 가기 싫다고 뻐팅기고.. 일이 생겨서 그랬지만 취소도 하고 .. 그랬었는데.. 

 지금 둘째 낳고 50일 됐지만, 출산 후에도 토요일 시간 만큼은 빼줘서 꾸준히 받고 있다. 

 거의 종결 시점이 되었는데, 5회 정도 더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더 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 또한 하나님의 기막힌 타이밍 같다. 

 아무리 다투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기 낳고 산후조리하는 상황에서 주말에 한시간씩 상담 받으라고 먼저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전부터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이어서 할 수 있었다. 

 또 타이밍상 둘째가 태어나는 시점과 맞물려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더 커지고, 앞으로 양육하는 관점에서도 어떻게 해야할까 가이드라인이 필요했을텐데.. 상담하면서 여러가지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아이와 나에게 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고.. 

 

 

 언제나 하나님 하시는 일은 그렇듯이, 그 분의 타이밍에 그 분의 역사하심은 옳다. 

 고난과 시험이 찾아오면 이제 조금 편하게 "그 분의 작업이 시작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수술대 위에 가만히 눕게 된다. 

 알아서 마취해주실거고, 알아서 째주실거고, 알아서 도려내주실거고, 알아서 봉합하실거고, 알아서 진통제 주실거고 알아서 살펴봐주실거니까.

 신랑의 퇴사와 재취업 과정에서 조금은 편안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자유했더니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시는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랬더라, 좋았더라 할 수 있지 그 과정에서 아프지 않을 수 없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선교 중에 알게 된 퇴사 소식, 선교 중에 말씀으로 위로해주시고 마음을 잡아주셨던 것이 커서 그런지 더욱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잠잠히 그 타이밍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왕절개 수술을 두번째 했다. 

 첫째 때 해봤기 때문에 어느정도 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둘째는 정말 정말 더 힘들었고, 더 아팠고... 회복도 더 늦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50일이 된 시점에서도 아직 수술부위에서 농이 나와 소독하고 있다. 

 아이를 꺼내는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난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했고, 교수님을 신뢰해야 했다. 

 첫째때는 진통 중이었고, 응급으로 진행되서 정신없이 이루어졌던 과정을 둘째때는 맨 정신으로 다 봤다. 심지어 수면마취도 안해줘서 후처리며 회복실이며 모든게 기억이 난다..;;;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게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차가운 수술실 분위기, 살을 도려낼 때 나는 냄새들. 마취 중이지만 다 느껴지는 분위기들.. 

 그리고 수술 후의 통증과 여러가지 내가 감당해야 할 회복 과정. 

 삶의 고난, 문제를 해결 할 때 하나님의 작업도 수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나님의 작업이 언제나 완벽하지만, 우리에겐 완벽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 수술부위의 농이 계속 차고, 다른 후유증이 올 수도 있는거고.. 이슈들은 계속될 수도 있는거고.. 

 비유를 하다보니 사람의 작업과 하나님의 작업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내 요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한다는 것. 

 그 수술은 끝이 나고, 결국 잘 아물고 잘 될거라는 것.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 분의 아주 큰 계획 속에서는 완벽한 그림을 이루어가고 있으실거라는거.

 

 간증을 할 때, 이런 기록을 남길 때 늘 조심스러운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는 불변의 진리이지만, 

 모두에게 사람이 원하는 결과로 '선하심'을 드러내지 않으실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스토리일뿐,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주실지는 모르는 이야기인 것. 

 그래서 조심스럽다. 

 우리 동생은 기도해서 수술이 아주 잘 됐고, 은혜가운데 살았지만..

 어떤 사람은 기도해도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안 좋게 끝날수도 있는거라는 것.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고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평안케 하시고..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맡기고 내려놓았을 때 그 분의 의도대로 살았을 때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함. 

 신랑 취업이 끝까지 되지 않고, 우리집이 정말 차상위 계층, 기초수급자로 살아가더라도 ...

 그 또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고 역경을 헤칠 힘을 주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이 정도로까지는 고난 주셔도 괜찮아요라는 한계선을 누구나 갖고 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셔도, 죽을만큼은 아니겠죠. 버텨볼만해요. 그 정도로 안된다. 그냥 기대치를 0으로 갖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훈련이 우리에겐 중요한 것 같다.

 

 늘 큰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오물조물 나를 만지시고 작업하시는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신앙의 눈금을 깊이 깊이 아주 깊이 새깁니다.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 가정 가운데 하나님이 끝까지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만져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기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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