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日記2009.09.28 00:13

 사회복지과 수업을 늦은 나이에 듣고 계시는 울 어무니, 

 항상 힘들어 하시며 주말만을 기다리신다. 
 그 이유는 '숙제' 때문에.. 
 1학기를 한 번 겪으셨던 찰라라, 아주 지혜롭게 10가지 과제를 주별로 나누어 부담을 안주시는 대신 꾸준히 숙제를 부탁하신다. 
 
 "이번 주에 해줘야 할 건 이거야 ~"
 웃으시면서 갖은 비유 다 맞추고, 전주 집까지 배웅해주시고, 
 뇌물공세에 못 이기는 척 숙제를 해 드린다. 
 그래도 요즘은 돋보기 끼시고 타자 치는 연습을 하시며, 책에 밑줄만 그어 드리면 당신이 타자를 쳐 숙제를 제출하신다. 
 
 이번 주 과제는 '나는 이런 부모였다'이다. 
 당신이 어떤 부모였는지, 자신은 기억이 안난다며 나보고 좀 써달라고 하신다. 
 당신이 날 어떻게 키웠냐고, 별 특별한게 없는 것 같다고, 간절한 눈길로 부탁하신다. 
 
 난 또 정중히 "엄마가 생각해 보셔요. 엄마가 어떤 부모였는지.. 그 숙제는 못해드립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교수님이 엄마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며 부담되서 죽겠는데, 좀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셔서 - 
 그럼 생각나는대로 불러보라고 이야기했다. 
 브레인 스토밍을 해 볼 작정이었다. 시도해보면 이야기거리가 많이 나올테니, 그 후에는 엄마한테 맡길 참. 
 
 우선 생각나는 건 어렸을 때 아빠가 자전거에 우리를 태우고 다니며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 시켰던 장면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덕에 아직도 우리가 인사성이 밝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고 -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는 연필 하나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는 법이 없다고, 다른 엄마들에 비해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게 생각이 난다고 하신다. 숙제도 도와달라고 이야기 하기 전 까지는 도와주지 않고, 준비물 챙기는 것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했던 것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큰 제목에 '독립성과 자발성, 자율성'을 적는다. 
 

 또 생각해보라고 얘기하면서, 내가 생각나는 걸 덧붙인다. 
 부안에서 살면서 동화책 앞 장 그림 복사해다 주신 것, 벽에 낙서하고 그림 그려도 제제하지 않았던 것, 동화책이 닳아 없어진 거, 
 시골 텃밭에서 딸기 키워 우리랑 같이 따러 가고, 그 날 저녁에 잼 해 먹고, 
 쥐불놀이 했던 거, 바닷가에서 노을 감상 했던 거, 
 엄마 나름대로 추억과 나 나름대로의 추억을 덧붙여 자연 속에서 어울어진 우리의 모습을 그린다. 

 음식은 모두 엄마 손으로, 특히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이스크림도 만들어주고, 팥빙수도 만들어주고, 피자며 거의 사서 먹는 간식이 없을 정도로.. 엄마는 이유식을 해줬던게 기억이 나나보다. 텃밭에서 가꾼 각종 채소를 손수 말려 이유식을 만들었었는데 맛이 없는데도 애들이 잘 먹었었다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가보다. 
 
 어렸을 때 집에 '마이크'가 있었다. 전축이 있긴 했지만, 그 마이크는 선을 뽑아 사용하는 그야말로 '장난감'이었다.  딸 세명이 돌아가면서 그 마이크를 차지해 노래를 부르고, 어렸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 부리는 것도 잘했다고 한다. 
 교회 크리스마스며 여름성경학교며 언제든 무대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었다고,  
 그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나서도 떨리지 않고, 리더쉽이 있는 아이로 자라게 된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토끼풀로 팔찌 만들고, 목걸이 만들고, 반지 만들고, 
 엄마가 자라면서 했던 놀이들 하나 하나 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던 것을 추억할 수 있었다. 

아픈 동생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씀이 더 많으신 모양, 

 목소리가 살짝 떨려가며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 난 아이가 3개월만에 의식을 찾고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라가 여기까지 온 것은 최선을 가지고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핀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집에 가두지 않고, 사람은 사람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때로는 다 큰 애기를 업어야 했고, 쉽게 체력적으로 소모되어 아이를 다루기도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 가는 곳에 데리고 다니며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보라가 건강하고, 밝게 웃으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한 2~30분을 그렇게 이야기 하고 나니 엄마 왈 
 "그래도 나 애들 잘 키웠고만~"
 "그럼 그럼, 엄마 훌륭했지!"

 정리해달라고 하시는거, 또 엄마가 해보라고 하니 이 작은 사건들에 구구절절 사연들을 덧붙여 노트 3장을 꼬박 채우시는 우리 엄마. 
 숙제 잘 완성 하셨나요 ?



  엄마 , 아빠.
  사실 아동학을 배우면서 가장 속상했던 순간은 '내가 부모님께 받은 상처가 이렇게 컸구나' 이론적으로 비추었을 때 상처가 드러나는 거였다. 우리 부모님은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나의 정서적인 지지도 안해주시고 - 참 속상하다. 뭐 그런 생각.
 조금 크고 나니, 우리 부모님이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셨던 것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스스로 상처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 충분한 사랑 받았잖아. 그 때 그 상황에서 그게 상처가 되었을 수 있지만 - 그 땐 어쩔 수 없었던 것, 그 때 부모님은 모르고 계셨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
 스스로 위안하고, 스스로 치유하고,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이 힘도 부모님께로부터 받은거니까. 
 
 엄마랑 얘기하는 동안, 행복한 추억을 많이 꺼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었던 최선의 것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앞으로 공부할 시간이 더 많아,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는 끊임없이 꺼내지겠지만-
 적어도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아'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Posted by 기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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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엄마 발표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는데,
    나도 괜히 짠하더라..

    엄마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엄마셨어 :)

    2009.10.02 15: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응 ,완전 멋진 엄마 ^-^ㅎ
      숙제하면서 엄청 감사했다지 ^^
      언니도 발표 들으면서 많이 감사했을텐데 ㅋ그치 ?
      아빠도 시켜봐 ?

      2009.10.05 09:20 신고 [ ADDR : EDIT/ 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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