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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9.06.01 하나님의 기막힌 타이밍:: 임신 중에 신랑의 퇴사, 출산 후 취업.

 

 #1. 애 둘 맘

 

 애 둘 맘은 힘들다. 

 곧 아기 백일. 

 백일이 지나면 친정엄마 찬스 끝 .. 

 흑 ㅠ _ㅠ 

우짜노 ;;;; 어쩔 수 없지 ㅠ 

 

 오늘 첫째 어린이집 안 보내고 둘 육아중 . 

 둘을 혼자서 보는건 불가능. 

 집안일에 여러가지 생각하면 진짜 불가능 ㅠ 

 

 내 시간은 없다 . 

 내 시간이 주어지면 가계부 정리, 자격증 공부, 그렇게 하고 싶은데 .. 

 집안일 할 여유도 없다. 

 지금 택배 온 것 정리해야하고, 하는데 .. 

 첫째가 자니 둘째가 깨고 .. 

 둘째 놀다가 이제 막 잠들었는데 첫째 일어날 시간 ㅠ 

 낮잠 시간에 휴식은 없다 

 어제 낮잠을 잤다. 친정엄마가 계시니 낮잠을 자면서.. 오늘이 마지막이야 싶어서 애기가 울어도 안 일어나고 잤다 

 그래봤자 30분이지만, 그 30분 자는것도 내게 매우 소중한 시간. 

 

 

 #2 . 선교 

 결국 호아 외할머니, 호아, 아빠 이렇게 등록했다. 

 대단한 우리 가정 ㅋ 

 우리가 대단한것보다 하나님이 대단하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가정말씀을 참 잘 정했다. 

 이 말씀을 밤마다 묵상하고 읊조리면 어떠한 결정도 내 손에서 결정되는게 없다. 

 

 호아를... 엄마 없이 등록하면서 

 요게벳의 노래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들려보내는 것. 

 사무엘을 바쳤던 한나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미국에서 잠깐 들어왔다 나간 윤아가 나한테 얘기한다. 

 "언니, 내가 인생을 내일이 있는 것처럼 살면 열심히 안 살더라고.. 안 행복하더라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야 더 사랑할 수 있더라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선교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지에서 특별히 내가 하나님을 전하고 몇 명을 회심시키고, 대단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 

 그냥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그 마음과 합하여 쓰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번엔 정말 제대로 '보내는 선교'를 한다. 

 그 동안 말로 했던 '보내는 선교'는 기도제목 받고 기도하는 시늉만 했다면, 

 20개월 된 딸을 홀로가 아니지만 외할머니, 아빠와 함께 보내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 그리고, 동생 돌봄, 신생아 돌봄을 독박으로 해야하는 상황들 .. 

 나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하나님은 아시지요?)

 

 딸을 보내면서 오는 관심 .. 

 그 땅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 

 여러가지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고, 기도해야 할 제목들도 많다. 

 정말 '보내는 선교'를 하는 것. 

 나는 여기에 있지만, 내 마음은 여기에 못 있을 듯 

 난 어려운 결정을 했다. 

 하나님이 하셨다. 

정말 ..... 대단하시다 우리 하나님. 

 

 

 

 # 3. 가계부 

 정말 정리 안되는 가계부 . 

 고정지출 여러가지 빼면 한 달에 80만원으로 생활해야한다. 

 식비는 그렇다쳐도, 이것저것 생필품 사고 .. 

 뭐 사고 싶은것 한 두개만 사도 훌쩍 넘는 돈이다 ㅠ

 

 예전 같았으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마음 크게 두지 말자 생각할텐데..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외벌이로 지내는 지금 ..

 내가 언제 경제 생활을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계속 마이너스로 살 수는 없으니

 지혜가 많이 필요하다.

 

 고정지출에서 뺄 수 있는 부분을 빼보자 생각해도, 보험, 대출이자, 아파트 관리비, 어린이집 비용 등...

 하 .....

 지혜를 구하자.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굶어 죽지는 않을거야. 우선 당장 냉장고만 파 먹어도 1~2주는 살 수 있을 듯 ㅋ

 

 

 #4. 천기저귀 입문 

 아직 배송되진 않았지만, 천기저귀를 샀다. 

 둘째 80일 되는데.. 

 자꾸 마음의 부담감이 생긴다. 

 쓰고 버리는 기저귀를 볼 때마다 .... 

 기저귀 떨어져서 130개 이상씩 박스의 기저귀를 살 때마다 ... 

 이거 금방 써서 버려지는거, 환경 오염은 얼마나 심할까 ... ;; 

 미세먼지 때문에 이 땅을 떠나고싶다고 하는데, 그 미세먼지도 이런 것에서 나오는거 아닐까.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 땅에 묻어도 문제 태워도 문제.. 

아무리 친환경 기저귀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아무튼 ... 그래서 천기저귀를 샀다. 

 둘째 엄마, 미친 짓이라고 생각도 했다. 

하다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마음의 부담감이 있으니, 한 번 해보고 ... 도저히 안되겠으면 안하면 되는거 

대단한 환경보호를 하려는 주의는 아니지만, 아무튼 !! 해보자. 

 

 더불어, 

둘째 출산 전후로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알게 되고,

 아이 발달에는 모빌도 별로 좋지 않다하고, 바운서도 스윙도 쏘서도 ...

 육아템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성인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아이의 발달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육아템을 멀리하고 그냥 키우자 하고 있는데...

 (아주 0은 아니지만, 타이니 모빌도 있고, 역류방지쿠션에 눕히기도 함)

 소리나는 놀이감, 자극적인 것들 피하고 싶은 마음에 장난감 사지 않고 지내기 시도중 .

 

 첫째는 6-7개월에 갔던 문화센터 수업의 씨디를 사서, cD플레이어를 호기롭게 구매하고

 뽕을 뽑다 시피할 정도로 잘 들었다.

 그런데 애가 돌이 되면서 였던가.. CD 돌아가는 것에 시선이 꽂히고 그걸 가리면 싫어하고 ..

 그 시각적인 자극이 과한 것 같은데 너무 집중해서 보자 치웠었다.

 최근에 다시 CD를 찾아서 들려주었는데, 예전만큼 집중 안해서 다행이다 싶었다가..

 다시 보니 돌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더라는 ... ;;

 카카오 미니 통해서 동요도 틀어주는데, 내가 원하는 노래를 즉시 즉시 듣는게 어린 아이들의 발달에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듣는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즉시의 반응들이 기다림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핸드폰 유투브는 거의 안 보여주고 있고, 자기 동영상과 부채춤 영상 보는데...

 처음에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추억(?), 기억, 이야기거리 등의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서 보여줬다가

 이 또한 중독이 될 수 있어서 최대한 안 보여주고 있다.

 부채춤 영상은 정말 좋아하는데, 많이 반복해서 봐서 그런지 부채춤을 들고 춤을 따라하더라는...

 16,17개월부터 그랬는데.. 그게 너무 신기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보여줬다가 그것도 최근에는 자제하고 있다.

 내가 카톡을 하거나 핸드폰을 만지면 와서 달라고 하는데, 동영상을 틀어주기보다 그냥 핸드폰 잠금화면 풀어진 상태에서 이 어플 저 어플 켜서 반응을 보고,

음성 메모를 킨 후에 녹음 버튼을 누르면 음성 데시벨에 따라 쭉 이어지는 것을 보고 '기차'라고 말하며 좋아하는 모습.

 녹음된 파일을 다시 들려주면 자신의 목소리가 나와 신기해하는 모습 ..

 예전에 기관에서 근무할 때는 이 모든게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녹음후 자기 목소리 듣기도 활동에 있었다지...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런 미디어를 활용해서 놀이하는게 귀여워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즉각적인 반응과 중독, 그리고 어떤 사물을 집중있게 탐색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겨져서 고민스럽다.

 다른 놀이를 하다가도 핸드폰, CD 플레이어, 카카오미니 등을 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꽤 오랜 시간 앉아있는다.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제한하고 방해하고 있진 않을까.  

 그냥 단순한 놀이더라도,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했으면 좋겠고 .. 아이로부터 나와서 하는 발현적 놀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갖춰진 환경에서 상황에서 세상에서 제한하는게 한계가 있겠지만..

 노력하는거지 뭐.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 계속 바라보고,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거지.

 100프로 차단하고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앞으로도 ...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영유아기에는 어느정도 되도, 세상과 더 가까이 갈 땐 다른 친구들과 삶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환경에 이상함을 느끼겠지.

 아무튼 부모가 되는 것은 너무너무 어렵다 ㅠ

 

 

 #5. 아이 설사가 장염(?)

 

 아이가 주말동안 설사를 했다.

 토요일에 설사 세번을 한 시간 단위로 해서 깜짝 놀랐다.

 바로 집으로 와서 아이 컨디션을 살폈고, 밥을 많이 먹지 않으려고 해서 차라리 굶는게 낫겠다 싶어서 굶겼다.

 주일 아침에 또 다시 설사를 했고, 예배 드리고 놀다가 집에 왔다.

 다행히 더 보지는 않아서  횟수가 줄어드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에 설사하는 상황을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말씀드리자 장염 증세 있는 친구가 있으니 병원을 다녀오는게 좋겠다 하셨다.

 집에서 쉬다가 오후에 병원을 가려고 하니 친정엄마는 횟수가 줄고 있으면 괜찮아지는건데 굳이 갈 필요 있겠냐고 하셨다. 

 나도 설사만 생각하면 아이가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고, 특별히 열이 있거나 구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 괜찮을거 같아서 지켜보고 싶었다.

 약을 많이 쓰는 것을 싫어하니까 .... ;; 

 아무튼 그래도 단체 생활이니 전염성이 있다 하면 쉬어야 하니 다녀왔는데..

 병원에서는 오히려 어린이집마다 방침이 있으니 다 낫고 보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아직 설사는 있는거고, 혹시 모르니 화요일에도 쉬면서 지켜봤다. 약간 무른 변을 봤고 설사는 멈췄으니 등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

 수요일 아침에 무른 변을 봤길래, 어린이집에 보냈다. 

 한 시간이 못되어 연락이 왔다. 아이가 무른 변을 보니 하원하는게 좋겠다고 .. 

 장이 다 회복안된 것 같다고 정상변 보고 등원해달라고 하셨고, 한참 후 오후에 의사 소견서를 제출해달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전염성 있는 장염이라고 격리해야한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설사도 아주 심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해야하나 싶었고 .. 

 평소에도 무른 변을 자주 보는 아이라 언제 정상변을 볼지도 몰라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영아들이 지내는 곳이니 서로 조심해야하는건 알겠지만 .. 

 어린이집을 보내야하는 상황과 못가게 되는 상황이 겹치자 마음이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아이 컨디션도 너무 좋고, 먹는 것도 잘 먹는데.. 

 정상변 볼 때까지는 쉬어야 한다니 ㅠ_ㅠ 

 어느 정도가 정상변인지 .... 의사 선생님께 물어봐야겠다. 

 무른변 볼 때도 전염성이 있는건지 ;;;; 

 

 

 그나저나 우리 1호기의 낮잠이 끝나 나는 여기까지 ...

 

 가계부 정리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생각 정리 겸 일기를 쓰다보니 낮잠 시간이 끝났다 ㅠ 

 얼집 일할 때도 ..... 낮잠시간은 짧더니.... 

 애기 키우면서도 낮잠시간은 너무 짧다 ㅠ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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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日記2019.06.23 00:16

가정을 위한 중보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자발적인 것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아기 엄마들과 물흐르듯이 시작하게 된 모임.
중보 기도 시간을 30분을 정하니 어떻게 기도하나 싶어서 시작조차 두려웠던 ㅋㅋㅋ 

그렇게 기도가 어려운 사람이었구나 ;;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데, 

나의 신앙관이 ...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삶,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지 고민해서 살고 싶었고 

 부부 관계를 이루는 것도 그러했다. 


 중보기도 모임 중에 한 가정의 문제를 두고 함께 기도하고, 나누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던 글이 생각났다. 

 "나는 죽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가 머리된 것 처럼 신랑이 나의 머리가 되어 내가 순종하고 신랑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드려 사랑한 것처럼 날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라는 것을 결혼 전에 많이 생각했다.
결혼 후 신혼여행에서 대판 싸우면서 이 사람한테 순종하는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과 결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혼자 주저리 일기를 쓰다가..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것”처럼 결혼 생활에서도 나를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왔다.

(사실 이 부분은 상담하면서 선생님이 ‘그건 아니다’라고 지적해주셔서 나중에 마음이 편해지긴 했는데.. )

무조건 순종하고 내 뜻을 죽이며 가정 생활을 위해 희생해야겠다는 다짐이 참 힘들고 지키기 어려웠고

그런 생각이 건강한 생각은 아니라고 상담 선생님은 그러셨다.

.
정말 주님이 내가 죽고 신랑이 원하는대로 살기를 원하시는진 모르겠지만,

 부부관계와 신앙.. 연결해서 볼 때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나를 훈련하시고..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해야하는거.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맞추고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이 주인되신 삶을 살기 위해 정말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하셔야 하는 것처럼.. 

신랑과 한 몸을 이루고 한 뜻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정도의 고통이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함.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참 어렵고, 머리가 둘인 상황에서는 더 어렵고 ..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잡히면 좋은데.. 

둘 다 부족하고 어리숙한 사람인지라 그게 어려운게 문제 ㅠ 


끊임없이 지혜를 구해야하고, 그 뜻을 맞춰가는 과정을 거쳐야겠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우리 가족, 

그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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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9.06.21 15:53

우리 엄마 호아 선교 보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갑니다

어떻게 역사하실지, 어떤 스토리를 쓰실지 기대가 됩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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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日記2019.06.08 22:26

 

 

 오늘 오랜만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교회 결혼식, 그리고 업체도 딱 우리가 했던 곳이라 오버랩 . 

나도 2층에 대기실이 있었는데, 똑같네.. 

 

 2016년 10월 . 아직 만 3년이 안되었구나. 

 

 결혼 후에 신랑 신부가 잠시 들린 카페에서 전날에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아 ... 우리 집도 그랬는데, 

 일주일 전에 파혼을 오가며 싸우고, 정말 소리지르며 거의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응급차를 불러야 할까 싶을 정도로 나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싸웠었지.. ;;

 결혼식 가는 차 안에서도 크게 다툰 건 아니었지만, 정말 결혼을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순간 

 잘 풀고 말고도 없이 결혼식은 진행됐고, 이렇게 우리는 잘 살고 있다 ㅋㅋㅋ 

 

 그 부부를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이루어가시고 만져가시는지 느끼고 기억할 수 있었다. 

 3개월간 더 피터지는 싸움을 하고, 복덩이가 생기면서 휴전이었지만 

 임신 중에 전혀 싸우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임신했는데도 이 사람은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서 내 인생을 한탄하기도 했고..

 애기 낳고 나서도 한바탕 크게 싸웠기도 했고 .. 

 아무튼 ..... 

 

 최근에 신랑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신혼 초에 먼저 상담을 받으면서 우리 문제를 조금 객관적으로 보긴 했었는데.. 

 아주 극심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닿아서 그렇게 진행했다. 

 신랑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 이민, 베트남 이주도 생각하고 있던 터라 

 우리가 똑 떨어진 섬에서 둘이 살려면 이렇게 소통이 안되면 안되겠다 싶었던 마음이 컸다. 

 어쨌든, 그렇게 받게 된 상담이... 참 도움이 많이 된다. 

 

 의사소통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신랑의 입장을 과거의 양육 환경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해석해주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 

 나의 답답한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고, 

 상담사 분의 이야기를 통해 내 입장이 전달되고, 또 신랑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에 참으로 감사하다. 

 이것은 시작이겠지,, 

 앞으로 다른 문제들로 수 없이 부딪히고 갈등을 겪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답이 우리에게 있는게 아닌 것을 알고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시고 해결해주실 것 같다. 

 

 상담이 그러한 작업인듯 .. 

 신랑의 어린 시절 경험으로부터 오는 습관들, 안 좋은 모습들이 조금씩 닦여가며 성숙해가고 성장해 갈 수 있도록 ... 

 계속 기도해야겠다 :)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우리 가족 선교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마음을 주세요.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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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학과를 졸업했고, 

 졸업 후 바로 아동학 전공으로 석사를 들어갔다. 

 석사 수료하고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1년 3개월 일했고, 

 석사 졸업하고 직장어린이집에서 3년 일함. 

 임신하면서 그만두고, 잠깐의 계약직으로 위촉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난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를 18개월 터울로 낳게 되면서, 이제 둘째 50일.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펼쳐가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을텐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든 나는 일을 하고 싶고 그 동안 꿈꿔온 것을 펼치고 싶다. 

 

 아동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꿈꾸고 계획했던 일들은 

 1. 어린이집 현장 

 2. 보육, 육아 관련 연구 

 3. 이야기치료 부모 상담. 

 

셋 다 너무 다른 분야, 준비해야할게 달라서 고민이다.

 첫째 보내고 있는 발도르프 어린이집이 참 이상적이고 잘 맞는 것 같아 그것으로 준비하고 싶은 생각.. ;;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취업하고 싶은 생각도 :) 

 

 보육, 육아 관련 정책 연구 쪽에는 계속 관심 갖고 있는데,

 연구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도 들면서 ... 이미 나이며 경력이며 늦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

 박사급 연구직은 너무 부담스럽고 준비해야할게 많고 ㅠ

 흑 ㅠㅠㅠㅠㅠ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부터 천천히 슬슬 공부해볼까 싶은 생각도 들고 :)

 

 이야기치료,

 2급 자격을 가까스로 땄는데, 반영팀 활동도 못하고 여러가지 조건으로 다시 따야하는거 아닌가 싶다.

 실전도 없고 해서 자격증만 갖는건 의미가 없으니...

 정말 뜻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관련 상담쪽 알아보면서 입문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들지만..

 무엇보다 자신 없는 것은, 내가 상담자로서 괜찮은 달란트가 있는지...

 부족한게 투성이라 ㅠㅠ

 

 하나님이 나를 만드실 때는 어떠한 계획이 있으실거고, 지금까지  인도하신것처럼 ... 지금도 인도하고 계시겠지

 

 그래도 이 세가지, 꽤 오래던부터 꿈꿔온건데 변하지 않고 계속 관심갖고 준비하게 하시고, 마음 두게 하시는 건 이유가 있으신 것 같다.

 내 인생 참 기대가 된다.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살고 있을지... 어떤 퍼즐이 맞춰지고 있을지... 

 

 지금 엄마로 지내는 이 시간도 반짝반짝 빛나게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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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즌 몇 일까 . 

 신랑과 처음 만나서 연애하다가 중간에 공백기 갖고 다시 만나고 .. 믿음으로 결혼을 결단하고 .. 

 결혼 후에도 여러가지 폭풍이 있어서 시즌을 나누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잊었더니 시즌 몇인지 까먹었다. 

 

 한 시즌 4 쯤 될 것 같긴 한데 ㅋㅋㅋㅋ 

 지난 겨울에 선교가 그 시즌의 시작이었을까. 

 나는 선교를 등록했을 뿐이었는데, 우리 가정에.. 아니 나에게 엄청 큰 시험이고 고난이 찾아왔었다. 

 임신한 상태로 첫 아이를 돌보는게 너무 힘들었던 그 때 신랑의 두 달 장기출장이 잡히고, 갑자기 허리를 삐끗하고 .. 

 그러다 선교 중에 신랑의 퇴사 소식을 접하고 ..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은 소식들의 연속.  

 그 때 선교 기간 중이었기 떄문에 다행히 마음을 다 잡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이야기 후속편 . 

 

 신랑은 우리가 선교에서 돌아오는 주에 회사에서 일을 정리했다.

 2월에는 설 연휴가 있었는데, 쓸 수 있는 모든 연차를 끌어 써서 2월부터 쉬기로 했다. 

 다행히 2월 월급은 나왔고, 2월은 재직중 상태로 떴었고.. 설 명절 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퇴사하면서 같이 일했던 과장님이 추천해준 베트남 회사. 

 베트남 현지회사였고, 신랑이 일본어,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했더니 마음에 들어 오퍼가 왔다. 

 신랑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 싶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긴 했는데, 여러가지 걱정이 앞서긴 했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상황, 그리고 거기서 받는 월급으로 생활 가능한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공기, 그리고 독박 육아의 또 다른 차원의 고난. 

 성장하는 나라라곤 하지만, 피하고 싶으면 피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면접을 보러 갔고(항공권은 자부담.....-_-;;) 연봉 이야기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보류해두기로 했다. 

 가까이 지내는 교회 언니, 오빠가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는데.. 우리도 차라리 캐나다를 갈까 싶었다. 

 내가 가진 유아교육 관련 자격증이 이민에 도움이 된다기에 또 알아보고, 신랑도 학교 다닐 때 용접을 꽤 잘했다길래 용접학원도 알아봤다. 

 이민은 돈이 있어야 간다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옴. 용접학원도 보통 용접학원이 아니고 이민 알선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신랑 허리도 온전치 않아 용접은 패스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먹고 살려면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신랑..;;) 

 나는 자격증만 있지 영어가 1도 안되는데.. 무슨 이민인가 싶어서.. ;; 먼저 아이엘츠부터 공부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둘째 임신중이니까... 내가 둘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는 있을까 싶기도 하고 .. 

 뭔가 딱히 답이 없는데, 이민을 준비하려니 막막하고 어렵고 ... 그랬었다. 

 잡코리아, 사람인에 신랑과 함께 공고를 보면서 괜찮은 조건이나 집 가까운 곳, 인 서울로 넣으면 연락조차 오지 않는 취업 현실 ㅠ

 자소서 문제일까, 이력서 문제일까.. 이직 하려면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2월, 3월 약간 피 말리는 시간들.... 

 애써 괜찮아, 뜻이 있을거야 라고 위로하긴 했지만.. 정말 이러다가 내가 애기 백일 됐을 때 쯤 취업해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먹고 살 작정을 하긴 했다. 

 상대적으로 나는 ... 어린이집에라도 취업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신랑의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렇게 해서 주어진 면접의 기회들이 감사했다. 

 몇 차례 실패를 맛보고.... 내정자가 있다던가, 뭐가 안맞다던가... 

 세번째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다녀와서 신랑이 '완전 망했어.'라고 얘기해서 .. 이번에도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접었었다. 

 외국계 회사에 영어를 잘해야하는데, 임원 면접을 볼 때 임원이 "의사소통이 자유로울 정도의 영어 실력은 아니네요."라고 딱 집어 얘기했다고 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있을 때 쯤이 출산 임박. 

 제왕절개였으니까 날짜를 정해야하는데.. 4/5, 4/9일 중 택일이었다. 

 난 하루라도 더 빨리 낳고 싶긴 했지만, 아기가 뱃속에서 있을만큼 있고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꺼내주고 싶어서.. 

 차라리 진통 걸려 응급 제왕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4/9로 날을 정했다. 

 취업이 되지 않은것은 않는거고, 나는 애기를 낳아야 하니 불안해하기만 할 수는 없었던 것. 

 신경을 오히려 그 쪽으로 안 쓰려고 무딘 애를 썼던 것 같다. 

 통장 잔고를 보면서, 산후 조리 목적으로 모아둔 돈은 아니었지만 적금도 딱 맞게 만기되는게 있었고.. 

 어찌 어찌 산후조리는 할 수 있겠다 싶어 금전적인 부분을 신경쓰지 말자고 했다. 

 2월 말 퇴사니까 3월에 바로 실업급여 신청하라고 해서 실업급여도 나왔고.. 

 소득이 갑자기 줄었기 때문에 나는 차상위 계층이나 그런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알아봤었다. 

 그러던 중에 영양플러스도 알게 되었고 ..

 그런데 ... 정말 ...... 거짓말처럼..... 

 만우절 날, 4/1일. 마지막으로 면접 본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정말, 올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였지만.. 정말 거짓말 아니야? 라는 생각에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 어디 갈까? 해서 고양 스타필드를 갔고 ㅋㅋㅋ 

 칸샤와 복덩이 예쁜 여름 옷 하나씩 사고,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소고기를 샀다. 

 그리고 신랑 좋아하는 간식 고래밥, 홈런볼, 프링글스 등등을 샀다. 

 신랑 좋아하는 카레를 먹고, 신랑 좋아하는 레고를 구경하고 우리의 자축 파티를 그렇게 했다. 

 취업일은 4/15일로 정해지고.. 

 계산해보니 4/9일에 아기를 낳고 내가 딱 조리원에 있을 때 출근을 하는 꼴이 되었다. 

 기막힌 타이밍, 그렇지만 신랑은 수술한 나의 보호자로 밤낮 없이 병원에 있다가 주말 쉬고 출근하는거.. ;; 

 

 

 금전적인 부분

 회사를 그만두고나서 퇴직금, 위로금, 실업급여 등으로 생각지도 못한 수입들이 생겼다. 

 취업을 당장 하지 않아도 아이 낳고 산후조리하는 기간 동안 어떻게든 버티겠지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외벌이로 생활하면서 언제나 생활비가 부족하긴 했지만, 펑펑 쓰며 과소비하는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씀씀이를 크게 줄이지 않고 '우리 이제 벌이가 없으니 아껴쓰자' 정도로 살았다. 

 숨이 조일만큼 답답하지 않았고, 그냥저냥 먹고 사는 정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난 임신중이니까 먹어야지 하면서 즐겁게 먹었다 ^^

3월 한 달 소득이 없는 것으로 국가에는 잡혔다. 건강보험료가 만원대가 나왔다(전월세 포함이 안된 돈이어서 더 쌌던 것 같음)

 거의 저소득층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이었던 것 같다.

 영양플러스를 예전에도 신청해보려고 했는데, 소득 기준이 애매하게 안되서 못했는데.. 이번에 신청하려고 보니 전 3개월 보험료로 산정한다고..

 3개월 평균치로 계산하니 대상자가 되어 신청도 되었다.

  

 

퇴사를 하면서 주어진 휴식 시간. 

 신랑은 작년 12월 30일 허리를 삐끗해 연초부터 허리 때문에 계속 고생했었다. 

 주사 치료 받고 겨우 몸을 일으켜 지방 출장까지 갔는데, 퇴사라니... 이참에 쉬면서 치료 받으라고 했다. 

 도수치료를 주 2회 편한 시간에 오가면서 치료 받고, 또 소개 받은 척추 재활 하시는 분께 가서 치료도 받고.. 

 운동은 많이 못했지만, 치료에 조금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막달 임산부가 아니라면, 신랑 허리가 괜찮았더라면, 자발적인 퇴사였더라면 우리는 너무 신나게 놀러다녔을 것 같다.

 사실 일 그만 뒀다고 했을때부터 근교라도 놀러갈까, 강원도라도 다녀올까 숙소를 알아봤었는데..

 운전해서 오가는 길도 걱정스럽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 과감하게 내려놓게 되었다.

 쉼.

 정말 이렇게 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랑도 하루종일 뒹굴뒹굴 놀고.. 나도 그러했다.

 2월에는 복덩이가 어린이집 입소 전이었으니까.. 쉬다가 틈나면 미쁘다 카페가서 놀고..

 나는 복덩이 어린이집이 발도르프라고 해서 독서 모임이나 놀이감 만드는 소그룹 모임 등도 참여할 수 있었고..

 신랑 찬스 덕분에 여유로운 막달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아픈 신랑이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낑낑대고 복덩이를 양육했을 때보다는 훨씬 수월한 것도 감사.

 집 근처 공원에 가도 같이 가고, 병원에 가도 같이 가고..

 더구나 32주부터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서 진료를 봤는데 교수님은 토요일 진료가 없으셔서 평일에 진료를 봐야 하는 상황.

 신랑이 없었더라면 복덩이 데려가서 초음파도 보고, 산전 검사도 하고 했어야 했는데 가능했을까 싶다.

 3월은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어서 등하원도 그렇고, 적당히 짧은 시간 어린이집에 있다가 하원하는 시스템이라 피로도가 더 컸는데..

 그것도 같이 하니 참으로 감사 :)

 많이 누리지는 못했지만, 막판에는 복덩이 어린이집 맡겨두고 잠시 생기는 오전 타임에 홍대 카페 가서 데이트도 했다.

 이게 얼마만에 누리는 둘 만의 시간인지 ...

 복덩이가 어린이집을 일찍 갔더라면 영화 보고, 쇼핑하고 더 즐겼을 수도 있는데(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적절한 타이밍으로 조절하신 것 같다는 느낌 ㅎ

 

  상담 시작 .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고.. 

 신랑의 갑작스런 퇴사와 함께 불안감, 그리고 나도 예민해서 다투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늘 그랬지만 정말 별 일 아닌걸로 다투고,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닿게 되자 불안감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한참 베트남, 캐나다 이주도 생각하고 있었던터라.. 이 상태로 제3국가에 가서 우리 가정만 동떨어져 살면 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관계를 계속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해서 기초 공사는 해두는게 좋을 것 같아 상담을 권유했다. 

 평소같았으면 여러가지 핑계가 있었을텐데, 시간도 여유로웠고 상황이 그래서 그런지 받아보겠다고 했다. 

 상담 신청하면서 문제로 생각하는 상담 이유를 적으라는데, 그것도 내가 적었다. 

 처음엔 엄청 소극적으로.. 가기 싫다고 뻐팅기고.. 일이 생겨서 그랬지만 취소도 하고 .. 그랬었는데.. 

 지금 둘째 낳고 50일 됐지만, 출산 후에도 토요일 시간 만큼은 빼줘서 꾸준히 받고 있다. 

 거의 종결 시점이 되었는데, 5회 정도 더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더 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 또한 하나님의 기막힌 타이밍 같다. 

 아무리 다투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기 낳고 산후조리하는 상황에서 주말에 한시간씩 상담 받으라고 먼저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전부터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이어서 할 수 있었다. 

 또 타이밍상 둘째가 태어나는 시점과 맞물려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더 커지고, 앞으로 양육하는 관점에서도 어떻게 해야할까 가이드라인이 필요했을텐데.. 상담하면서 여러가지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아이와 나에게 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고.. 

 

 

 언제나 하나님 하시는 일은 그렇듯이, 그 분의 타이밍에 그 분의 역사하심은 옳다. 

 고난과 시험이 찾아오면 이제 조금 편하게 "그 분의 작업이 시작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수술대 위에 가만히 눕게 된다. 

 알아서 마취해주실거고, 알아서 째주실거고, 알아서 도려내주실거고, 알아서 봉합하실거고, 알아서 진통제 주실거고 알아서 살펴봐주실거니까.

 신랑의 퇴사와 재취업 과정에서 조금은 편안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자유했더니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시는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랬더라, 좋았더라 할 수 있지 그 과정에서 아프지 않을 수 없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선교 중에 알게 된 퇴사 소식, 선교 중에 말씀으로 위로해주시고 마음을 잡아주셨던 것이 커서 그런지 더욱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잠잠히 그 타이밍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왕절개 수술을 두번째 했다. 

 첫째 때 해봤기 때문에 어느정도 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둘째는 정말 정말 더 힘들었고, 더 아팠고... 회복도 더 늦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50일이 된 시점에서도 아직 수술부위에서 농이 나와 소독하고 있다. 

 아이를 꺼내는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난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했고, 교수님을 신뢰해야 했다. 

 첫째때는 진통 중이었고, 응급으로 진행되서 정신없이 이루어졌던 과정을 둘째때는 맨 정신으로 다 봤다. 심지어 수면마취도 안해줘서 후처리며 회복실이며 모든게 기억이 난다..;;;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게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차가운 수술실 분위기, 살을 도려낼 때 나는 냄새들. 마취 중이지만 다 느껴지는 분위기들.. 

 그리고 수술 후의 통증과 여러가지 내가 감당해야 할 회복 과정. 

 삶의 고난, 문제를 해결 할 때 하나님의 작업도 수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나님의 작업이 언제나 완벽하지만, 우리에겐 완벽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 수술부위의 농이 계속 차고, 다른 후유증이 올 수도 있는거고.. 이슈들은 계속될 수도 있는거고.. 

 비유를 하다보니 사람의 작업과 하나님의 작업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내 요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한다는 것. 

 그 수술은 끝이 나고, 결국 잘 아물고 잘 될거라는 것.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 분의 아주 큰 계획 속에서는 완벽한 그림을 이루어가고 있으실거라는거.

 

 간증을 할 때, 이런 기록을 남길 때 늘 조심스러운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는 불변의 진리이지만, 

 모두에게 사람이 원하는 결과로 '선하심'을 드러내지 않으실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스토리일뿐,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주실지는 모르는 이야기인 것. 

 그래서 조심스럽다. 

 우리 동생은 기도해서 수술이 아주 잘 됐고, 은혜가운데 살았지만..

 어떤 사람은 기도해도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안 좋게 끝날수도 있는거라는 것.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고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평안케 하시고..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맡기고 내려놓았을 때 그 분의 의도대로 살았을 때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함. 

 신랑 취업이 끝까지 되지 않고, 우리집이 정말 차상위 계층, 기초수급자로 살아가더라도 ...

 그 또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고 역경을 헤칠 힘을 주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이 정도로까지는 고난 주셔도 괜찮아요라는 한계선을 누구나 갖고 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셔도, 죽을만큼은 아니겠죠. 버텨볼만해요. 그 정도로 안된다. 그냥 기대치를 0으로 갖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훈련이 우리에겐 중요한 것 같다.

 

 늘 큰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오물조물 나를 만지시고 작업하시는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신앙의 눈금을 깊이 깊이 아주 깊이 새깁니다.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 가정 가운데 하나님이 끝까지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만져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기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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