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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Coffee

[Coffee Story] 커피의 기원,


 
에티오피아 칼디 기원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에 사는 칼디 라는 목동이 염소에게 풀을 먹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칼디는 염소들이 매우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칼디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나무에 붉은 열매가 달린 것을 발견하였다.
염소들이 흥분한 원인이 그 열매에 있을 것으로 추측한 칼디는 자신이 그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고는 그 또한 흥분되어 염소들과 함께 춤을 추게 되었다.

 그 광경을 마침 지나가던 수도승이 목격하여 신기하게 생각하고는 그 열매를 가지고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수도승은 이 붉은 열매가 혹시 악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 속에다 던져버렸다. 잠시 후 커피열매가 불에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가 수도원을 감쌌다.
 
그래서 수도승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에 타다 남은 열매를 갖고서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한 결과, 뜨겁고 검은 음료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마시면 기도할 때 졸음이오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활기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커피는 악마의 것이 아니라, 신이 내려준 고귀한 선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모하메드 기원 

 모하메드가 잠을 쫓을 수 있도록 천사 가브리엘이 천상에서 커피를 가져왔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모하메드는 기운을 내어 40명의 남자를 말에서 끌어내리고 40명의 여자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커피음용의 시초

 커피를 음료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커피열매의 씨를 오랫동안 찬물에 담가두었다가 추출된 액체를 마셨으나 점차 끓는 물에 넣을 경우 훨씬 추출이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 많은 궁리 끝에 커피의 진가를 알아낸 것은 라세스 이후 14세기 말엽에 이르러 아라비아에서 커피생두를 볶는 기술이 개발되고 부터이다. 화려한 변신의 순간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불길이 커피를 새로운맛의 세계로 끌어낸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쌉쌀한 맛과 깊은 향취에 모든 사람이 매혹되었다

 


 
커피명칭의 유래
커피(Coffee)라는 명칭은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커피의 원산지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아랍어인 Qahwa, 즉 <식물에서 만들어진 포도주, 커피 및 여러 음료를 총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17세기 초 유럽에 소개된 커피는 ,<아라비아의 포도주>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커피역사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말 아관파천을 전후한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나라의 이권을 찬탈하려 각축을 벌이던 때에 커피가 전해졌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이 전했다고 하는 이도 있고 일본인이 전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로 1895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다.”고 되어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미인계 전략으로 한국 사교계에 침투한 손탁이란 여자가 러시아 공사관 앞에서 경영하였던 정동구락부이다.
이곳은 당구장과 다방을 겸한 곳으로 각종 다류와 양식을 선보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일본인 나까무라가 서울에 문을 연 다방 나까무라가 최초의 근대식 다방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일본식 다방은 한일합방 직후에 명동에 다수 문을 열었으나 이들은 모두 일부 고위층만이 드나들던 곳으로 일반인들은 감히 출입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커피를 처음 마셔본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이상한 서양의 국물이라 하여 “ 양탕국” 이라고 이름 붙였다.

커피와 고종황제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암울한 시기이던 일제시대 때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탓이엇는지 커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더욱 쐐기를 박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고종 독극물 사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하여 머무는 1년 여의 기간 동안 당시 세자이던 순종과 함께 커피맛을 들였다.
 그 후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커피 맛을 못 잊고 계속 마셨다. 그런데 아관파천 시절에 세도를 부렸던
 역관 김홍륙이 하루 아침에 세도의 날개가 떨어지자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덕수궁 주방에서 숙수(熟手큰일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로 있던 그의 하수인을 매수하여 임금님과 세자가 즐겨 드는 커피에다 독을 넣게 하였다.
 다행히 고종 임금은 입에 품었던 독차를 뱉어 내어 괜찮았지만, 한 모금을 마셔버린 세자는
그것이 유약체질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당시 커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어떠했으리란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출처 : PrimeHouse
 http://primehouse.co.kr/coffeestory.html